전통의 수호자 모로코 카사블랑카 외곽의 여성 공동체
카사블랑카 북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이 국제 도시의 외곽, 바다와 사막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 작은 마을에선 매일같이 흙을 빚는 손길들로 분주합니다. 전기도 약하고 도로조차 닿지 않는 언덕 위에 놓인 이곳은 세상의 속도와는 다른 시간으로 흐르는 공간입니다. 이 마을의 중심엔 오직 여성들로 구성된 토기 제작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들은 불을 다루고, 물을 저장하고, 삶을 빚어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작업은 단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닌 공동체와 문화를 잇는 생존의 서사이기도 합니다.
이 여성 공동체는 1980년대 말 카사블랑카 중심부의 개발과 주변 농촌 이주의 여파로 삶의 기반을 잃은 여성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남성 가장의 실직과 도시 외곽으로의 강제 이주가 늘어나던 시기 많은 가정이 불안정한 생활에 내몰렸고 이 와중에 공동체 내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 팔자는 제안이 나오면서 흙을 만지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엔 아이들을 위한 물그릇이나 소금 단지를 만들었고 그것이 시장에서 소소한 수익을 올리자 이내 공동체 전체의 일로 확장되었습니다. 바쁜 도시 한편에서 하나의 전통직업이 다시 태어난 셈이었습니다.
모래와 물, 손과 불로 완성되는 전통의 기술
이 공동체에서 만들어지는 토기는 일반적인 도자기와는 다릅니다.
이들이 사용하는 흙은 카사블랑카 근처에서 직접 채취한 붉은 점토로 모래와 재를 섞어 일정한 농도로 반죽한 후 손으로 하나하나 빚어냅니다. 전통적인 모로코 토기 기술인 타지네 방식을 응용하면서도 지역적으로 독특한 양식이 더해집니다.
기계도 없고 물레조차 없이 두 손으로 중심을 잡고 천천히 올려 굽을 만들고 입을 다듬는 방식으로, 장식은 날카로운 조약돌을 이용하거나 말린 야자잎으로 선을 긋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완성된 토기는 며칠간 그늘에서 건조해 마을 한가운데 흙을 파고 쌓은 간이 가마에 나뭇가지와 말린 염소 똥을 태워 구워냅니다.
이 고온의 불을 통제하기 위해서 여성들은 매일 새벽부터 순번을 정해 가마 앞을 지키며 온도를 조절하고 도중에 무너지지 않도록 돌을 쌓아 안정시킵니다. 이 과정은 고도의 집중력과 숙련을 요하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그 불빛 속에서 하나하나 익어가는 토기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함께 만든 하루의 증거가 됩니다.
이는 단순한 공예가 아닌 공동체의 리듬이자 문화적 의식이며 노동을 통해 연대를 실천하는 방식입니다.
흙 속에서 피어난 여성 노동의 존엄
모로코의 여성들은 오랫동안 비공식적으로 노동의 최전선에 있었습니다. 가정 내 무급 노동, 농업 보조, 가족 중심의 가내 수공업 등 그들의 손은 쉴 새 없이 바빴지만 정작 그 가치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토기 공동체가 그런 여성 노동의 현실에 작은 금을 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흙을 빚고 불을 다루는 일은 단지 생산 행위가 아니라 여성이 경제적 주체가 되는 통로가 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공동체 내 여성들은 자신이 만든 토기 하나하나에 이름을 새기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누군가는 홀로 되어 자녀를 키우며 이 일을 통해 자립할 수 있었고, 또 누군가는 가정폭력을 피해 마을로 돌아와 공동체에서 다시 삶의 균형을 찾았습니다.
이 공동체는 여성의 자율성과 연대를 토대로 하는 새로운 사회적 구조를 실현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여성들은 단순히 도움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세상을 만드는 주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라져 가는 전통 직업의 한 조각
소중한 전통 직업의 한 조각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지역 전통 토기 기술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대량 생산 제품에 밀려 경쟁력을 잃어왔고 도시의 소비자들은 전통 방식으로 만든 그릇보다 싸고 가벼운 도자기를 선호하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정부의 산업화 정책은 전통 직업군에 대한 지원보다 현대적 기술을 배우는 직업교육에 집중되고 있어 이러한 공동체 기반 수공업은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운 구조입니다.
모로코 정부는 전통 공예를 국가유산으로 지정하긴 했지만 실제 현장에서 그 혜택을 체감하는 경우는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여성 공동체처럼 비공식적이고 비가시적인 노동 구조에서는 각종 혜택을 신청하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그 결과 이 마을의 젊은 여성들 대부분은 더 이상 흙을 만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카사블랑카 중심가로 나가 청소부나 가정부 또는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도시의 일원이 되고 있습니다.
전통을 잇는 것이 가난의 상징처럼 여겨지게 된 이 현실 속에서 전통 직업의 한 조각은 이렇게 조용히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가능성의 싹, 국제사회와의 연결
이 여성 공동체의 이야기는 점차 국경을 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유네스코를 비롯한 국제문화기구들은 이 공동체를 지속 가능한 전통기술 모델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전통 직업은 다큐멘터리와 국제 포럼에서 소개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 중심의 협동 방식, 지역 재료의 활용, 전통 지식의 현대적 전환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오늘날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이 공동체는 큰 의미를 지닌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공정무역 플랫폼을 통해 이들이 만든 일부 토기 제품이 유럽과 북미의 소비자들에게 판매되면서 수익이 다시 공동체로 환원되는 구조가 점차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흐름은 단순한 전통의 수출이 아닌 공동체가 외부와 연결되며 자생력을 키워가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라져 가는 전통 직업이 단지 눈물의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이처럼 실질적인 연결과 순환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교육의 도구로서 전통 공예가 지닌 힘
이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토기 제작은 단순히 생활 수단이나 문화유산을 넘어 교육적 도구로도 활용이 가능합니다.
공동체는 마을 내 어린이들에게 흙 만지는 법을 가르치고 기술뿐 아니라 협업과 인내, 창의성이라는 가치를 함께 전할 수 있습니다. 흙이라는 재료는 그 자체로 유연하고 실수해도 다시 빚을 수 있는 성질을 갖고 있어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도심의 아이들이 마을을 방문해 흙을 만져보고 토기 굽는 과정을 체험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는 도시와 농촌, 세대와 세대, 소비자와 생산자를 잇는 유의미한 연결 지점이 되고 전통 공예가 갖는 교육적 가능성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전통은 단지 과거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감각을 익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 있는 접근이 되고 있습니다.
흙과 불 속에 담긴 사람의 이야기
흙은 말이 없지만 모든 것을 기억합니다.
카사블랑카 외곽의 이 여성 공동체가 만들어낸 토기들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부서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단함이 아니라 유연함에서 비롯된 힘으로 여성들의 손끝에서 태어난 전통은 단지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공동체를 잇는 다리가 되고 세대를 관통하는 유산이며 삶을 회복하는 실천이었습니다.
전통 직업 수호라는 말속에 담긴 의미는 단지 과거를 지키자는 말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이미 답을 써 내려가고 있는 이들이 지금도 토기를 굽고 있습니다. 불 앞에 선 그들의 눈빛은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흔들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