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고원에서 태어나는 커피 도자기 속 전통 직업의 숨결
에티오피아는 커피의 발상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의 기원이 바로 이곳 아프리카 동부의 고원지대라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줍니다. 커피의 기원과 더불어 이 땅에는 또 하나의 숨은 전통 직업이 존재합니다.
커피를 끓이기 위한 전통 도자기 제바나(Jebena)를 만드는 세라모닉 장인들의 이야기가 이곳 에티오피아에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도예가가 아닙니다. 제바나는 에디오피아 커피 문화의 중심에 있는 도구이자 에티오피아인의 일상과 의식을 연결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에디오피아 전통 커피 도자기 제바나의 제작은 단순한 그릇 제작을 넘어 커피 문화 전반의 정체성과 깊게 맞닿아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제바나를 만드는 전통은 에티오피아의 농촌과 도시를 잇는 문화적 가교 역할을 수행하며 수공예와 생활문화의 경계에서 살아 있는 전통문화유산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전통 도자기 제바나 단순한 커피 주전자를 넘어선 의미
제바나는 둥글고 볼록한 하부와 좁은 목, 길게 뻗은 주둥이로 구성된 독특한 형태의 도자기 주전자입니다.
에디오피아의 제바나는 전통적으로 여성 장인들이 손으로 흙을 빚어 만들며 바닥이 둥글기 때문에 사용 시에는 특별한 받침대나 재받침 위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이 커피 도자기 제바나는 커피를 끓이고 따르는 기능뿐만 아니라 가정과 공동체를 하나로 모으는 상징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 세리머니가 중요한 문화 행사입니다.
전통 커피 세리머니는 단지 음료를 마시는 시간이 아니라 냄새와 소리, 손놀림, 이야기로 구성된 다감각적인 문화 행사입니다.
손님이 방문하면 주부가 정성스럽게 커피를 볶아 갈고 제바나에 담아 끓인 뒤 세 번에 걸쳐 커피를 나눠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 세 번의 커피는 각각 아볼(Abol), 토나(Tona), 바라카(Baraka)로 불리며 축복과 화합 그리고 우정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 전통 도자기 제바나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그것을 빚어내는 장인은 단순한 전통 직업 장인이 아니라 에티오피아 전통문화의 매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천 년의 손끝 기술 여성 전통 직업으로 이어지다
에티오피아의 전통 세라모닉 장인은 대부분 여성이며 세대 간 전승을 통해 기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세라모닉 작업을 지켜보며 배우고 성인이 되면 흙을 직접 다루기 시작합니다. 흙을 다지는 방법과 물의 양을 조절하는 요령 그리고 불에 굽는 타이밍 등은 오랜 감각과 경험을 통해 습득되는 부분입니다.
전통 세라모닉 장인들은 주로 강이나 언덕 근처에서 채취한 점토를 정제한 후 손으로 직접 형태를 잡습니다. 이후 건조와 초벌을 거쳐 탄을 이용한 야외 가마에서 소성합니다. 기계나 틀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제바나 하나하나가 모두 조금씩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고 이는 오히려 수공예의 고유한 매력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 줍니다.
전통 제바나는 각 마을마다 고유의 특색이 있는 형태와 장식이 존재해 숙련된 사람은 제바나만 봐도 어느 지역 출신인지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현대화의 벽 앞에 선 전통 직업
하지만 이러한 전통 직업도 플라스틱이나 금속 주전자 전기 커피포트 등이 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보급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수작업으로 만든 제바나의 수요는 점차 줄어들고 있고 빠른 생활 리듬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는 커피 세리머니보다는 간편하게 인스턴트커피를 타 마시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어 커피 도자기의 문화적 입지가 점차 좁아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전통 도자기 시장 자체가 기계화된 대량 생산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어 세라모닉 장인의 생계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역 축제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수공예 전시 외에는 활로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이에 따라 많은 장인들이 전통 도자기 제작을 포기하거나 다른 생업으로 전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능성을 지닌 전통 직업
여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커피의 본고장이라는 문화적 자산과 제바나의 상징성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제바나를 단순한 생활 도구가 아닌 문화 상품으로 포지셔닝하여 관광객에게 소개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더불어 에티오피아의 커피 수출 산업이 성장하면서 전통적인 커피 문화 자체에 대한 해외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어 장인의 작품이 세계로 진출할 가능성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일부 비영리 단체와 정부 기관에서는 이 전통 직업을 보존하기 위해 장인 등록제도나 기술 전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커피 박물관이나 문화센터에서 제바나 제작 시연을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등 보호 활동도 병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전통 직업을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닌 미래를 위한 문화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커피 관광과 함께 살아나는 전통 직업
최근에는 커피의 문화적 가치가 부각되면서 에티오피아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커피 투어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특히 하라르, 시다모, 예가체프 같은 커피 산지에서는 전통 커피 세리머니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그 안에는 제바나 제작 과정을 볼 수 있는 세라모닉 체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부 장인은 자신이 만든 제바나를 직접 판매하거나 외국 시장을 겨냥한 소형 모델을 개발하기도 합니다. 이는 전통 직업이 단지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경제 활동의 주체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런 활동은 장인 개인의 자립에도 도움을 주며 지역 사회 전반에 활기를 불어넣는 촉매제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에디오피아의 전통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전통의 선택
에티오피아의 커피 세라모닉 장인들이 직면한 현실은 단순히 생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술의 전승, 문화적 정체성, 공동체의 지속성 등 수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동시에 이 전통 직업에는 현대 사회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사람의 손에서 사람의 손으로 이어지는 따뜻한 기술과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생태적 노동 그리고 공동체의 유대를 회복하는 문화적 힘이 바로 그것입니다.
앞으로 전통 직업은 일상 속에서 재발견되고 새로운 시대와 조화를 이루는 형태로 거듭나야 합니다.
에티오피아의 제바나 장인들이 그러하듯 전 세계의 모든 전통 직업인들이 다시금 삶의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인식과 지원도 함께 변화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전통 직업은 단지 오래된 기술이 아니라 지역 사회의 정체성과 문화 그리고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살아 있는 유산입니다.
에티오피아의 커피 세라모닉 장인들이 그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유는 생계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체성과 뿌리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가치를 되새기며 전통 직업이 오늘의 삶 속에서 다시 피어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