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사막은 혹독한 환경으로 유명합니다. 여름이면 기온이 40도를 넘나들고 겨울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극심한 일교차가 지속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척박한 땅에서도 사람들은 수천 년 전부터 지혜롭게 살아왔습니다.
그 중심에는 바람 탑(Windcatcher, 바드기르)이라는 독창적인 구조물이 있습니다.
바람 탑은 자연 바람을 실내로 끌어들여 더운 공기를 배출하고 내부 공간의 온도를 낮추는 전통적인 냉방 기술입니다.
이 바람 탑을 설계하고 짓는 전문 장인들은 오늘날에도 이란 전통 직업의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건축 노동자가 아닙니다. 오랜 시간 동안 자연과 기후 그리고 재료의 속성을 이해하고 구조적 안정성과 미적 감각을 모두 갖춘 전문 기능공이자 전통 예술가입니다.
바람 탑 건축 장인은 대체로 세습적 전통을 통해 기술을 이어받았으며 이로 인해 지역마다 특색 있는 설계 방식과 장식 기법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도시화와 함께 현대 건축이 빠르게 자리 잡는 시대 속에서도 이 전통 직업은 여전히 사막 도시의 심장부를 구성하고 있으며 기후 위기의 시대에 재조명받고 있는 생태 건축의 본보기로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바람을 설계하는 장인들, 그들의 전통 작업 방식
바람 탑을 짓는 과정은 단순한 벽돌 쌓기가 아닙니다.
장인들은 우선 건축 부지를 조사하고 해당 지역의 풍향과 일조량, 지형 조건을 철저히 분석한 후 적절한 형태의 바람 탑을 설계합니다. 바람 탑은 대개 탑 형태의 돌출 구조물로 그 내부에는 수직형 환기 통로가 존재합니다. 이 통로는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지면 아래쪽으로 끌어내리고 뜨거운 공기를 위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공기의 흐름을 조절합니다.
이러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 장인들은 전통적으로 흙벽돌이나 점토, 석회, 야자섬유 등을 사용합니다. 모든 재료는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 소재이고 이는 바람 탑이 단지 냉방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환경 친화적인 구조물임을 보여줍니다.
건축 장인은 벽체의 두께와 내부 통로의 넓이 그리고 창의 개방 각도 등을 조절하여 최적의 공기 흐름을 설계합니다. 이 기술은 고도로 숙련된 감각과 경험이 요구되는 작업으로 건축가라기보다는 기후 조정 기술자에 가까운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역과 함께 숨 쉬는 전통 직업
바람 탑 건축 장인은 이란 내에서도 특히 야즈드(Yazd), 케르만(Kerman), 카샨(Kashan) 등 사막 도시에서 높은 존경을 받는 전통 직업입니다.
바람 탑 건축 장인은 단지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야즈드 구시가지의 수많은 전통 가옥과 모스크 시장 건물 위에는 바람 탑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특히 바람 탑은 단독 건물뿐 아니라 물 저장고(zurkhaneh), 이슬람 학교(madrasa), 공공 목욕탕 등 다양한 공공시설에도 널리 사용되어 왔습니다. 장인들은 각각의 용도와 공간 규모에 따라 다른 형태의 바람 탑을 설계하여 구조물의 기능뿐 아니라 미적인 요소까지 고려하였습니다.
이러한 설계와 시공의 조화는 이란의 건축 예술이 단지 시각적인 아름다움에만 치우치지 않고 기능성과 환경 적응력이라는 실용적 가치를 함께 추구해 왔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산업화와의 충돌 그리고 전통의 쇠퇴
이러한 가치를 지닌 전통 직업도 현대화의 물결을 거스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20세기 후반부터 이란에도 본격적으로 서구식 건축양식이 도입되면서 바람 탑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에어컨과 전기 냉방 시스템이 확산되자 바람 탑 건축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어려워졌고 전통 장인들의 일거리 역시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과거에는 마을마다 바람 탑 장인을 고용해 건축을 의뢰했지만 지금은 일부 보존 건물의 복원 작업에만 간헐적으로 호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변화는 전통 기술의 단절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던 기술이 중단되고 있습니다. 바람 탑의 가치를 모르는 현대 도시 설계자들은 이를 무시하거나 철거 대상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아 실제로 수많은 바람 탑이 철거되고 콘크리트 건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란의 전통 직업 중 하나인 바람 탑 건축이 점점 잊히는 길로 향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되살아나는 전통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열쇠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전 세계적인 기후 위기와 지속 가능한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바람 탑 건축 기술이 다시금 조명받기 시작했습니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실내 온도를 10도 이상 낮출 수 있는 이 전통 구조물은 지나친 에너지 사용이 문제가 되는 현대 사회에서 환경 친화적인 대안 건축의 대표 사례로 부상했습니다.
이에 따라 일부 도시에서는 바람 탑 복원을 추진하거나 현대 건축에 적용하려는 실험이 시도되고 있으며 건축학교나 생태 디자인 학과에서 이란의 바람 탑을 교육자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전통 바람 탑 장인들의 기술을 기록하고 디지털화하는 프로젝트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란의 일부 청년들은 전통 건축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스타트업을 설립해 옛 기술을 기반으로 한 친환경 주택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전통 직업이 단지 과거 속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와 접점을 만들어 지속 가능하게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장인의 손끝에서만 구현 가능한 디테일과 재료 감각이 있습니다. 이는 기계로는 대체할 수 없고 우리가 지켜야 할 고유한 가치입니다.
사라지지 않아야 할 전통 직업이 갖는 의미
바람 탑을 짓는 장인은 단지 고풍스러운 건물을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연을 읽어내 인간의 삶에 적합한 공간을 설계하는 지역 사회의 삶의 방식 자체를 반영하는 공간 예술가이자 문화 수호자입니다.
사막의 거센 바람을 유익한 에너지로 전환시킨 이들의 지혜는 우리가 현대문명 속에서 잊어버리고 있는 자연과의 공존 방식을 되돌아보게 만들어 줍니다.
이란의 바람 탑 장인처럼 지역에 뿌리내린 전통 직업은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품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 직업들은 단지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져서는 안 되며 오히려 현대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 해법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존재를 기록하고 존중하며 새로운 세대에게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전통이 다시 숨을 쉬고 미래의 길을 밝혀주는 빛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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