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몽골 초원에서는 시간도 바람을 타고 흘러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대지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유목민의 삶을 지탱해 온 특별한 음료가 있습니다. 바로 아이락(Airag)이라 불리는 말젖 발효유입니다. 외부인에게는 다소 낯설고 진한 이 음료는 몽골 유목민들에게 있어 그 어떤 음식보다도 깊은 생존과 전통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말 젖을 채취하고 이를 정성스럽게 발효시켜 만드는 과정은 단순한 조리법이 아닌 세대를 이어 전해 내려온 전통으로 존중받고 있습니다.
전통 말젖 발효유 제조 장인은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목민의 식문화를 지키는 생생한 증인입니다.
현대 사회의 산업화 속에서도 여전히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손끝으로 계절과 동물의 상태를 읽어내는 이 장인들은 기술자이자 철학자로 불릴 만큼 섬세한 감각과 인내를 요구합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아이락 한 병에는 단지 영양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유목 생활의 철학과 자연에 순응하는 지혜 그리고 공동체를 아우르는 문화적 상징성이 함께 녹아 있습니다.
생존 전략에서 시작된 말젖 발효의 지혜 그리고 전통 직업의 탄생
몽골 고원의 극단적인 자연환경은 유목민들에게 적응이 아닌 생존과 공존을 요구했습니다.
사계절의 기온 차가 크고 이른 아침과 저녁 사이의 온도 편차도 극심한 이 땅에서는 정착 농업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선택된 생존 방식이 바로 유목 생활이었고 이에 적합한 에너지원이 바로 가축의 젖이었습니다.
특히 말은 몽골 유목민에게 단순한 교통수단이나 가축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재산이자 가족의 일원이었습니다.
말의 젖은 소나 양의 젖보다 단백질과 젖당 함량이 높고 특히 여름철에는 유산균 발효가 잘 이뤄지는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를 오랜 시간 나무통 안에 넣고 저어 발효시키면 톡 쏘는 산미와 부드러운 기포가 어우러진 아이락이 탄생합니다.
이런 발효법은 유목민의 지혜에서 비롯된 것으로 냉장 시설이 없는 환경에서도 식품을 장기간 보관할 수 있도록 하는 뛰어난 보존 기술이었습니다. 말젖 발효는 단순한 식문화가 아니라 생존과 적응을 위한 생태적 탄생이었습니다.
단순한 전통 발효유가 아닌 공동체의 상징
아이락은 몽골의 축제나 환영 행사, 가족의 결혼식, 어린이의 첫 승마일 등 몽골인들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빠지지 않는 전통 음료입니다.
발효유를 만드는 장인은 단지 음료를 제조하는 기술자 이상의 존재입니다. 전통 말젖 발효유 장인은 가족과 이웃에게 자연의 선물을 전달하는 연결자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한 마을에 노련한 말젖 장인이 있다면 그 사람의 손에서 나오는 아이락은 약이나 정화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출산 후 산모에게 아이락을 마시게 하여 기력을 회복시키는 관습도 남아 있고 아이락은 초등학교 급식으로도 제공되며 자라나는 세대에게 유목 문화를 몸으로 체득하게 해주는 매개체가 됩니다.
말젖 발효 장인이 만든 아이락은 지역 공동체를 하나로 엮는 문화적 구심점이자 세대 간 연결고리인 셈입니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는 몽골의 생활환경에도 변화를 가지고 왔습니다. 전통적인 유목 생활에서 도시 생활로 삶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이러한 전통도 점점 예전 같은 입지를 유지하기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몽골 유목민의 삶 속에서 함께해 온 전통 말젖 발효유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대 시장에서 다시 태어난 아이락, 전통의 새로운 길을 걷다
최근 몇 년 사이 몽골에서는 전통 발효 음료인 아이락을 현대적 방식으로 제품화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음료 산업의 확장을 넘어 사라져 가는 전통 직업을 되살리는 실질적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오직 장인의 손에서만 만들어졌던 이 음료가 이제는 도시의 냉장 진열대에도 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는 전통 발효유를 기반으로 한 브랜드를 론칭하여 유기농 아이락을 병에 담아 판매하거나 레스토랑과 카페 메뉴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품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장인의 철학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단순히 대량생산으로 접근하면 아이락 고유의 미묘한 산미와 효소 균형이 깨질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많은 업체들은 여전히 유목민 장인과 직접 계약을 맺고 전통 방식에 충실한 발효 과정을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통 직업의 보존과 현대적 수익 구조가 동시에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일부 기업은 수익의 일정 비율을 장인 공동체에 환원하거나 발효기술 교육을 지원하며 지속가능한 협업 모델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유럽과 일본까지 진출한 몽골의 전통 발효유 아이락
더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현대화된 아이락이 단지 몽골 내에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2021년 한 몽골 식품회사는 유럽 연합의 식품 인증을 획득한 뒤 독일과 프랑스 등의 유기농 시장에 아이락을 수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지방, 고단백, 자연 발효유라는 점이 건강을 중시하는 유럽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고 예상보다 빠르게 유통 채널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 역시 발효 식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갖고 있는 국가로 아이락에 대한 호기심과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능성 발효음료라는 콘셉트로 건강 음료 시장에 진입한 아이락은 일부 고급 백화점에서 전통 유산균과 함께 패키징 된 프리미엄 발효유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이락은 단지 유목민의 지역 전통을 넘어서 세계인이 찾는 건강식품으로 자리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 배경에는 전통 직업의 현대적 해석과 가치 부각이 뒷받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통이 상품이 되는 순간
물론 전통 발효유 아이락의 상업적 성공이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각에서는 지나친 산업화가 아이락 고유의 정체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병입 과정에서의 살균 처리나 장기간 유통을 위한 성분 조정 등이 원래 아이락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맛과 발효 원리가 왜곡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에 대한 대안도 점차 제시되고 있습니다. 제품의 라벨에 장인 인증 마크를 부여하거나 제조 과정에서 원조 장인의 이름을 명시하는 등의 방식으로 전통성과 정통성을 소비자에게 알리는 투명한 구조가 도입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제품의 차별화를 위한 전략을 넘는 전통 직업의 정체성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문화적 접근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람의 길을 따라 다시 시작되는 전통의 여정
아이락 발효 장인의 길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미래를 향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연과 함께 살아온 몽골 유목민의 전통은 제품 하나로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으며 그것이 상업적 가치와 만났을 때 전통 직업의 미래는 더욱 다채롭게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립니다. 느린 발효의 시간, 정성스러운 손길,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내놓는 용기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질 때 우리는 단지 하나의 음료가 아닌 하나의 문화를 마시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락은 이제 단순한 유목민의 생존 식품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 전통 직업이 살아 숨 쉬는 증거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흐름은 곧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 안의 전통은 지금 어디쯤에서 잊히고 있으며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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